생활

김인식감독이 이끈 한국야구팀

나는왕자 2006. 3. 27. 23:54
 

제1회 WBC는 일본의 우승으로 막을 내렸다. 우리나라 팀은 승승장구해 4강까지 올라갔다. 이를 두고 언론들은 ‘4강 신화’라는 말들로 수를 놓았다. 그만큼 어려웠고, 기대를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기대 외의 성적에 온 국민들도 놀랐고, 국민들의 관심이 쏠리기 시작했다. 4강에 멈춘 것 때문에 실망한 국민들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게임을 끝났다. 가장 큰 수확은 우리나라의 야구 실력이 어떠한가를 세계에 심어준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에 유형, 무형의 반사 이익을 얻었다. 정치인들은 'KOREA'라는 이름을 단 하늘색 유니폼을 입은 ‘우리나라의 팀이 4강에서 멈추지 않고 우승까지 해주었으면....’ 하고 은근히 기대를 했다. 하지만 경기는 어디까지나 경기이다. 세 번이나 일본을 이겨 놓고, 마지막에 지고 말았다. 이로써 결승 진출의 꿈은 접어야 했다.

이제 게임을 끝났다. 선수들도 각각 자신이 소속된 팀으로 돌아갔고 국민들도 신나던 야구에서 눈을 돌려 자신의 일터로 돌아갔다. 몇 가지 돌아보고 싶은 것이 있다.

 

첫째는 국민들에게 희망과 용기와 단합의 힘을 심어 준 멋진 경기였다.

2002년 월드컵 경기가 8강에 오르기까지 국민들을 신나게 했다. 새 정부 들어 3년이 지나면서 국민들은 여러 가지로 힘들어 했다. 무엇인가 신나는 것이 없을까 하고 찾고 있었는데, 여기에 야구가 한 몫을 했던 것이다. 야구처럼 국민들을 신나게 하는 일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야구 바로 전에는 우리나라 빙상선수들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우승과 준우승을 휩쓸면서 국민들을 신나게 했다.

 

둘째는 우리선수들의 팀웍이 이룬 쾌거였다.

우리 선수들은 흔히들 국내파, 해외파로 불리는 선수들이 어울려 있었다. 이런 경우에 각자의 개성 때문에 팀웍이 되지 않을 수도 있으나 대한민국이라는 이름 아래서 하나가 되었다. 선배들은 후배를 사랑하고 후배들은 선배를 존경하면서 팀웍을 이루었던 것이다. 그 결과 좋은 성적을 올릴 수 있었다. 아무리 좋은 선수들이라 할지라도 하나가 되지 않고 감독은 감독대로, 코치는 코치대로 선수들은 선수들대로 각각의 게임을 했다면 이런 결과를 가져 올 수 없는 것은 자명한 것이다.  

 

세 번째는 믿음직한 감독의 역할이 있었다. 

이번 경기에서 우리 팀을 4강까지 이끈 김인식 감독의 역할은 대단했다고 믿는다. 그러나 김인식 감독은 인터뷰를 하면서 “내가 뭐 했어 지들이 잘했지!”라는 말을 한 것을 보았다. 자신의 수고나 노력보다 선수들에게 공을 돌린 감독의 겸손 때문에 더 사랑이 간다. 김인식 감독의 한국 프로야구 통산 성적은 736승 38무 772패였다. 이것을 가만히 보면, 이긴 것보다 패배한 것이 36번이나 더 많다. 그만큼 그는 가슴에 피멍이 들고, 새카맣게 가슴을 태운 날이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고 할 수 있다. 언론에서는 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수식어를 붙여 주었다. ‘패배를 통해 승부를 즐길 줄 아는 도사’, ‘선수들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믿음 야구를 하는 감독’, ‘선수 탓’을 하지 않는 감독‘,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감독‘, ’상처받은 영혼들을 큰형님처럼 감싸주는 감독‘, ’다른 팀에서 버림받은 선수들을 품에 안아 ‘기’를 다시 살려 놓는 감독‘, ’가식적이지 않고 사심이 없고 계산하지 않는 감독‘, ’자신의 흠도 있는 그대로 보여 주는 감독‘, ’작전에 실패했을 때는 “허 그것 참, 내가 잘못 판단했어!”라고 인정하는 감독‘, ’선수가 계속 실수를 해도 참고 기다릴 줄 아는 감독‘, ’선수가 언젠가 제 몫을 해 줄 때 비로소 돌아서서 “그래, 내가 맞았어!” 하며 소처럼 웃는 감독‘ 등의 수많은 수식어가 붙어 있다. 그는 병마를 이겨낸 감독이다.

이번 쾌거를 보면서 목사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았다. ‘사람들을 신나게 하는 목사’, ‘하나의 목표를 향해 팀웍을 하나로 이루게 하는 목사’, ‘멋쟁이 목사’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