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테레사 수녀의 어두움

나는왕자 2007. 10. 29. 12:20

종교개혁 기념 490주년을 얼마 남겨 놓지 않은 시점에, 한 일간지에서 테레사 수녀의 고뇌에 관한 기사를 보았다. 이 기사는 테레사 수녀가 인도에서 한 평생을 희생적으로 봉사생활을 하였는데, 그 시기는 어두움의 시기였다는 것이다.

 

‘테레사(Teresa, 1910-1997) 수녀’라고 하면, “빈자(貧者)의 성녀(聖女)”로 전 세계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그는 인도의 캘커타 지역에서 가난한 이들을 위해 헌신한 공로로 인해 1979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하였고, 2003년에는 로마 교황청으로부터 복자(福者)로 추대되었다.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복자’는 성인(聖人)의 전 단계로 로마 가톨릭교회 신자들에게 공경의 대상이 되는 인물을 말한다.

 

그런데 그녀를 성인의 반열에 올리기 위해 그녀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했던 브라이언 콜로디에추크(Kolodiejchuk) 신부는 [테레사 수녀, 나의 빛이 되어라, Mother Teresa : Come Be My Light)]라는 책을 발간하였다. 이 책에서 저자는 “테레사 수녀가 캘커타에서 봉사활동을 시작한 1948년부터 1997년 사망할 때까지 신의 존재를 느끼지 못했다”, “그는 자신이 겪은 내적 고통을 지옥에 비교했고, 한때는 천국과 신의 존재 자체에 대한 회의까지 드러냈다.”고 하였다. 그러한 증거들로 그녀가 가까이 지내던 신부, 또는 고해성사 신부들에게 보낸 40여장의 편지들을 공개하였는데, 마이클 펜 데르 피트(Peet) 신부에게 보낸 편지(1979년 9월)에서는 “예수님은 당신을 특별히 사랑하신다. 그러나 나에게는 침묵과 공허함이 너무나 커서 (예수님을) 보려 해도 보이지 않고, 들으려 해도 들리지 않는다. 기도하여 해도 혀가 움직이지 않아 말을 할 수 없다.”고 하였고, 퍼디낸드 페리에(Perier) 대주교에게 보낸 편지(1953)에서는 “마치 모든 게 죽은 것처럼, 내 안에 너무나 끔찍한 어둠이 있다.”고 했고, 로런스 피카키(Picachy) 신부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내 영혼에 왜 이렇게 많은 고통과 어둠이 있는지 얘기해 달라.”고 하였다고 한다.

 

콜로디에추크 신부는 “테레사 수녀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혀 느끼지 못하면서도 매일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 ‘내가 원하는 것은 당신의 행복뿐’이라고 기도했다”며 “기독인들이라면 누구나 겪는 ‘신앙 속의 어두움’을 평생 껴안고 살면서도 믿음으로 충만한 궁극적 구원을 이뤄냈다.”고 하였다. 장로회신학대학교의 모교수는 [목회와 신학] 11월호에서 “신학적으로 행위를 강조할 때 내적 분열을 경험할 가능성이 있음을 인정한다”며, “테레사에게 있어서 영적 삶에서의 어둠이나 메마름은 고통스러운 것이었으나 하나님의 은총이었다.”, “하나님은 어두움을 통해 테레사 자신의 내면을 보게 했다.”, “테레사의 어두움은 하나님과의 친밀감에서 기인했다.”고 하였다. 정신나간 소리가 아닐 수 없다. 로마 가톨릭교회가 성경적인 건전한 교회였다면 루터와 같은 종교개혁자가 필요했겠는가? 차라리 종교 개혁자를 분리주의자요, 이단으로 정죄했던 로마 가톨릭교회가 옳았다고 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칠흑 같은 어두움을 경험할 수 있다. 형 에서의 복수의 칼날을 피해 도망하던 야곱, 귀향길에 형이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것은 그에게 칠흑 같은 밤중과 같은 시간이었다. 형들로부터 배신을 당하여, 종으로 팔려가고, 노예로 살았던 요셉의 청소년 시절, 욥에게 연속적으로 닥쳐왔던 고난의 시간들은 분명히 그들의 생애 가운데에 드리워진 어두움의 때였다. 신자와 불신자는 그 어두움 가운데서 다른 반응을 나타낸다. 신자는 그 가운데서 하나님을 찾아가고, 하나님을 바라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기를 기다리며, 하나님의 도움을 기다린다. 이들은 모두 하나님을 찾았고, 만났고, 응답을 받았다. 그의 섭리를 깨달았다. 그러나 불신자는 불평하며, 탄식하며, 더 큰 고뇌 속으로 빠지기도 하며, 그 속에서 헤어 날 길을 찾지 못한다.

 

신문에 소개된 내용으로 볼 때, 테레사의 어두움은 절망 중의 어두움이었다. 하나님도 없고, 천국도 없는 절망이었다. 한 평생을 가난한 자들과 함께 살았던 그녀의 희생은 아름답고 귀하다고 할 수 있지만 하나님 없는 희생과 봉사는 얼마나 헛된 것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뿐만 아니라 그녀의 희생적 봉사는 로마 가톨릭교회의 ‘이행득구’ 교리를 잘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