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위해 나무를 심는 지도자
제가 어릴 적 살던 시골에는 작은 산 세 개가 우리 마을을 마치 엄마가 아이를 품은 듯 작은 동네를 감싸고 있다. 그 동네 앞에는 작은 강(사실은 내)이 있다. 그리고 끝없이 넓게 펼쳐 있는 들판이 있다. 그래서 산과 강은 내 또래의 아이들에게는 사계절 내내 놀이터가 되었다가 대화의 장소도 되었고, 꿈을 키우는 장소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그 중에서도 산은 개고픈 시절을 살던 나와 우리 친구들에게는 간식거리를 제공하였고, 더 나아가 양식을 제공하는 곳이었다. 입술이 파랗다가 나중에는 까맣게 보일정도로 진달래꽃을 먹었고, 아카시아꽃 역시 그러했다. 또 늦여름과 초가을에 씹어보는 떨떠럼한 상수리 열매와 고염나무 열매의 맛은 무엇으로 표현할 길이 없다. 그뿐 아니다. 그 산 뒤편으로는 작은 밭떼기들 수없이 있었는데, 그 밭떼기들도 임자가 있었다. 모두가 우리 동네, 혹은 이웃 마을 사람들이 주인이었다. 사람들은 밭에서 골라 낸 작은 돌들을 쌓아 그 경계를 하였다. 그런데 그 밭떼기에서는 고구마, 감자, 메밀, 다래(목화)가 철을 따라 길러졌는데, 그것 또한 우리들에게 훌륭한 양식이 되었다. 그 작은 산은 철을 따라 우리들에게 놀이터가 되기도 하였다. 특히 겨울에 타는 나무 썰매의 재미는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였다. 어쩌다 눈이 오면 더욱 즐거웠다. 이렇게 추억이 많은 산이다. 당시로서 내게는 넓고 큰 산이었지만, 사실 큰 것이 아니라 해발 60-70m 정도 되는 작은 언덕이었다. 또 그 산은 동네 사람들이 세상을 떠날 때는 육체의 안식처를 제공해 주었다. 그래서 그 산은 우리들에게 아주 친숙했다. 그런데 그 산에는 나무가 많지 않았다. 이유는 두 가지였을 것으로 생각한다. 하나는 배고픈 시절 동네 사람들이 밭을 이룬다고 베어 냈을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땔감으로 사용하려고 긁어내고 잘라내었기 때문일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민둥산에 가까웠다.
최근에 미국의 민간 환경연구소 ‘월드워치’(world watch)의 설립자이자 '지구정책연구소'(Earth Policy Institute)의 소장인 레스터 브라운 박사가 ‘플랜B 2.0’이라는 책을 펴냈다. 그 책에서 “한국은 산림녹화의 세계적 성공작”이라고 평가했다. 브라운 박사는 “(6·25) 전쟁 뒤만 해도 황폐해 있던 산림이 2000년 방문했을 때는 울창한 나무숲으로 변해 있었다. (한국처럼) 지구도 다시 푸르게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통계에 의하면, 1950년대 후반 우리나라 나무 총량은 6000만㎥로 지금(5억600만㎥)의 12% 수준이었다. 전쟁으로 산이 망가지고 사람들이 나무를 베어 땔감으로 썼기 때문이다. 1955년 한 해에만 산림의 17%가 아궁이 속 땔감으로 사라졌다고 한다. 초등학교 시절인 1960년대의 기억 중, 식목일과 육림의 날이 있다. 식목인은 나무를 심는 날이었고, 육림의 날은 나무를 잘 키우자는 날이었다. 나라에서 강제로 나무를 심게 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래서 산림청이 만들어진 1967년 한 해에만 14억 그루를 심었는데, 2005년 작년 한 해 동안 심은 나무는 5171만 그루로 1967년에 비하면 27배나 된다. 그리고 연료도 석탄으로 바꾸었다. 그 결과 해마다 아궁이에 들어갈 수많은 나무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서울에서 자유로를 따라 문산으로 올라가면서 보면, 남쪽의 산과는 달리 건너 보이는 북한의 산들은 벌거벗겨져 있음을 보게 된다. 남한과는 달리 북한은 1970년대 이후 석유 부족과 전력난으로 땔감용 나무를 마구 베어냈기 때문이다.
통계에 의하면 지금 우리나라의 산림 1㏊당 나무 양 79.2㎥는 독일(286㎥)이나 미국(136㎥)에는 아직 많이 못 미치지만 1952년(5.6㎥)과 비교하면 14배나 된다고 한다. 벌거숭이산이 다시 푸르게 된 적이 없다는 상식을 깨뜨리는 기적을 일구어낸 것이다. 40년 이전 그때 우리는 하루 사는 것이 바빠서 나무를 베어 냈지만, 한편으로 곯은 배를 움켜쥐고 반강제로 산에 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앞장 선 지도자가 있었고 뒤따르는 국민이 있었다.
“한 해의 계책으로는 곡식을 심는 일만한 것이 없고 십년의 계책으로는 나무를 심는 일만한 것이 없으며 평생의 계책으로는 사람을 심는 일만한 것이 없다.”는 말이 있다. 미래를 내다보는 지도자가 절실히 요구되는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