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벌" 이야기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는 여러 가지 문제들이 자주 일어나고 있다. 그리고 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여러 가지 법과 규제 등을 마련하므로 제도화하려고 한다. 그 중의 하나가 학교 내에서의 사제(師弟)간에 일어나는 체벌이다. 최근, 어느 학교에서는 지각을 5분한 학생에게 훈육(訓育) 방법으로 200대의 매가 가해지고 그 결과 병원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이런 일들로 인해 교육인적자원부에서는 체벌을 아예 없애기 위해 법을 만들고 있다고 한다. 잘 하는 일인지, 잘못하는 일인지 따지기 전에 어쩌다가 이런 지경까지 왔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앞선다.
체벌은 일반적으로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내려지는 훈육 방법으로서의 시벌 중의 하나이다. 사제지간에 있어서 체벌은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생각들이 많이 달라졌다. 나 역시 학교에서 선생님에게서 체벌을 받으면서 자랐다.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선생님이 있다. 초등학교 5학년 때의 담임선생님이다. 시험을 쳤는데 반의 성적이 나빴다거나 수업시간에 떠드는 학생이 있었다거나 월사금(학비)를 제 때에 내지 못한 학생들이 많았다든지 하면 그 선생님은 개인보다는 단체로 벌을 주셨다. 그러나 단체로 받는 벌이었지만 정말 힘들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 선생님의 훈육 방법은 대개 책상 위에 올라가서 무릎을 꿇고 앉아 걸상을 들고 있게 하거나 단체로 매질을 하거나 학교 운동장을 몇 바퀴씩 도는 오리걸음이라는 것도 있었고, 선착순 달리기도 있었다. 그런데 교실에서 시벌을 할 때는 학생들에게 눈을 감게 했다. 왜 그랬는지는 알 수 없으나 모두 눈을 감게 했다. 눈을 떠는 학생이 있으면 더 심한 벌을 주겠다는 엄포도 있었다. 그렇게 벌을 받고 있노라면 쓰러지거나 의자를 놓치는 학생이 있게 마련이다. 그런 학생이 생기면 시간은 더 연장되었다. 요즈음의 학생들이라면 난리가 났을 것이다. 그런데 그 때는 선생님께 항의하는 학생도 없었고 항의하기 위해 학교로 찾아오는 학부모도 없었다. 학부모들은 자기 자식을 가르쳐 주는 선생님이니 그런 것도 다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는지, 아니면 학교로 찾아가는 것이 부끄러웠는지, 아니면 두려웠는지도 모른다. 학부모 입장에서 선생님은 하늘과 같은 존재로 생각했던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요즈음은 상황이 전혀 다르다. 분명 학생에게 잘못이 있기 때문에 선생님이 꾸중을 하여도 모든 학생들이 긴장을 하고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핸드폰을 꺼내기 시작하고 112나 119, 부모님들께 문자를 날리기 시작한다. 그러면 경찰이 달려오거나 학부모가 달려오고 한바탕 소란이 일어난다.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선생님께 주먹다짐이 일어나기도 하고 사과하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는다는 협박(?)과 그 협박에 눌려 학부모 앞에 무릎을 꿇고 사과하는 이상한 일들도 일어난다. 그래서 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휴대폰이 겁난다고 하는 선생님도 있었다.
하기는 체벌을 한다고 하는 명목이지만 교육을 위한 체벌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과격하고 과분했다고 하는 감이 없지 않은 체벌이 많다는 것이 문제이다. 또 사랑의 매라고 하지만 사랑이 아닌 미움과 원망의 감정이 섞여 있는 것들도 있다.
학교에서 일어나고 있는 크고 작은 체벌 이야기가 하루가 멀다 하고 언론매체를 통해 전국에 공개되고 있으니 교육인적자원부에서는 아예 구조적으로 체벌을 없애기 위해 법을 만들고 있다고 한다.
어디까지가 '교육'으로써의 체벌이고, 어디까지가 '폭력'에 해당하는가를 따지기는 어렵다. 하지만 제도만으로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성경에서는 사랑하는 아들에게는 아버지가 매를 든다고 하였다(히 12:5-13). 그것이 사람을 만들기 때문이다. 매의 소중함을 아는 이들은 체벌이 필요하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과격하여 인격을 무시하는 폭력으로 변질되지 않아야 한다. 참고로 [제임스 돕슨](James Dobson)이라는 분이 저서 [귀한 자식일수록 회초리를 들라](규장문화사, 2002)라는 책을 권하고 싶다. 분명 10들은 상처받기 쉬운 연약한 영혼이다. 균형있는 자녀를 양육하려고 하면 관대함과 규제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