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아프리카를 해방하려고 온 Son of Man

나는왕자 2006. 3. 13. 18:37
최근 미국 유타주 파크시티에서 손댄스 영화제가 개막되었다. 이 영화제에 출품된 많은 작품 중에 ‘흑인 예수님’을 다룬 영화 「인자」(Son of Man)가 화제가 되었다고 한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마크 돈포드메이 감독이 만든 「인자」(Son of Man)는 지금까지의 파란 눈과 갈색 머리를 소유한 백인 예수님에서 아프리카의 흑인으로 인물을 바꿔 놓았다.

영화 Son of Man은 촬영 장소를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 근처 빈민가로 잡았고, 아프리카의 코사드 종족의 언어로 만들어졌다. 아프리카 인들을 위한 영화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아프리카화(化)하였고, 성경 속에 나오는 예수님을 아프리카의 가난한 자들 가운데로 임하게 했다(?)고 할 수 있다. 시나리오 작가나 감독은 풍부한 상상력을 총동원하여 예수님을 아프리카인간들에게 아주 밀접한 관계에 있는 분으로 분장시켜 놓았다.

영화이기에 이것은 신선한 시도라고 볼 수 있겠다. 아프리카인들에게 자기와 같은 눈과 피부색깔을 가진 예수님이기에 더욱 호감이 가고 환영받을 만하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Son of Man은 너무나 귀중한 것들을 놓쳐버린 영화이다.

첫째는 "예수님은 인간의 구주"라고 하는 위대한 복음의 메시지를 잃어버렸다.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예수님은 인간의 구주가 아니다라고 항변하고 있다.

"Son of Man"이라는 말은 한글로 표현할 때 “인자”(人子)이다. “인자”는 예수님 자신이 자신을 사람들 앞에 소개할 때 했던 말이다. 이것은 하나님이셨던 자신이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사람의 아들이 되었다고 하는 위대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이름이다(요 1:14, 빌 2:6-8). 그런데 영화 Son of Man에서 예수님은 인생을 구원하는 구세주가 아니라 정치 해방을 위하여 온 혁명가로 나타난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인자와는 너무나 거리가 먼 인자이다.

예수님은 죄인을 구원하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신 분이다(마 1:21, 눅 19:10). 잃어버린 하나님의 양들을 찾아 구원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다(요 10:15-16). 그래서 그는 그 죄인들을 위해 십자가를 지셨고 죽으셨으나 하나님이 그를 부활하게 하심으로 우리의 구원을 완성시키셨다. 이 위대한 구원자 예수님에 대한 메시지를 찾을 수 없는 작품이라면 그것은 소설 또는 영화로서는 흥행할지 모르지만 복음과는 상관없는 것이 되고 만다. 오히려 복음 전도에 방해물이 되고 만다.

둘째는 비성경적인 내용을 너무 많이 담고 있다고 하는 점이다.
탄생하여 누운 장소가 베들레헴의 구유가 아닌 빈곤과 전쟁에 찌든 현대 아프리카의 빈민가의 가축우리였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천사들과 거친 말싸움을 벌이는 세파 속에 찌들어 거친 여인으로, 또 예수님에게 정치의식과 인간애에 눈을 뜨게 하는 여인으로 묘사되었다고 한다. 성경 기록에서 마리아는 겸손과 순종, 신앙심이 깊고 순결한 처녀였다. 뿐만 아니라 Son of Man의 예수는 할례를 치르다가 검은 가죽옷을 입은 사탄을 만나고, 무장 반란군들에게 비폭력과 연대투쟁으로 독재정부의 총에 맞설 것을 가르치는 해방투사로 나타난다. 단 그는 평등을 강조했다고 한다. 독재 정부는 평등을 강조하는 예수를 두려워한 나머지 십자가에 처형한다. 그러나 예수는 곧 부활하게 되는데, 여기서 예수의 부활은 폭력과 빈곤으로 희망이 없는 아프리카의 부활을 의미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Son of Man은 성경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영화이다. 이 영화의 감독 「돈포드메이」는 “예수는 로마의 지배를 받는 국가에서 태어났고, 그 당시 허용되지 않았던 평등을 설교했다. 그 사회의 불평등과 부정부패에 맞서 민중을 해방시키려는 예수를 그리며 서구사회가 만들어 낸 온화한 ‘유럽 예수’의 고정관념을 깨고 싶었다.... 흑인 예수를 통해 성경의 정치적 배경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우리는 아프리카의 정치적, 사회적, 종교적 상황을 간접적으로 듣고 있다. 가난과 폭력 정치, 이슬람교 등의 환경 때문에 피폐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아프리카인들을 구원할 길은 정치적 해방 밖에는 없다고 생각하여 해방신학을 부르짖는 성경을 떠나버린 신학자들도 있고, 예수님을 정치 해방가로 묘사한 신학서적들도 있다.

아프리카인들을 비롯해서 세상 사람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정치적 해방가 예수님이 아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죄인이다. 그래서 죄인을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만이 소망이다. 예수님만이 압박과 가난, 극한 질병 가운데서 허덕이는 인생에게 영원한 빛과 소망을 주는 구세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