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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對)를 이어 학원복음화에 매진하는 윤정숙이사장 이야기

나는왕자 2006. 11. 6. 19:23
어저께 한 일간지 기사를 보다가 깜짝 놀랐다. “代이은 학원복음화 쉴틈 없죠”라는 제목의 기사였다. 우선 기사 제목이 나의 관심을 끌었다. 내용은 부친 윤효랑선생을 이어 그의 따님인 윤정숙선생이 명덕육영회 이사장으로 학원복음화를 위하여 봉사한다는 이야기였다.

내가 놀랐던 것은 <윤효량선생>, <함안>이라는 두 단어 때문이었다. 함안은 나의 고향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함안은 옛 <아라가야국>의 수도였던 <아라>가 있는 곳이다. 옛 <아라가야>는 <삼봉산> 산자락 동남쪽에 있는 <아라>를 중심으로 자리를 잡고 있었다. 지금도 <아라>라는 이름의 동네가 삼봉산 아래에 있고 <아라>라는 이름의 초등학교도 있다. 그리고 여기저기 국보급의 무덤도 있다.

그 함안에 함안여자중학교, 함안여자고등학교가 있었다. 지금은 함안명덕여자중학교, 고등학교로 교명이 바뀌었다. <윤효량선생(1916-1978)>은 이 학교의 이사장이셨다. 그 학교는 내가 다닌 함안중학교와 가까이 있었기 때문에 잘 알고 있다. 윤효량선생은 교육가이자 자선사업가였다. 윤선생은 우리나라의 동족전쟁인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학교법인 명덕육영회를 설립하고, 1968년까지 고향인 함안에 5개의 중학교와 4개의 고등학교를 설립하였다. 그 학교들은 모두 고향인 함안 칠원을 비롯해서 군북, 칠성, 대산, 함안에 위치해 있다. 뿐만 아니라 한센병자들을 위한 정착촌과 보육원, 탁아소 등의 자선기관도 10여개를 세워 운영하였다. 한편 윤선생은 불교에 심취해 있었기 때문에 불교의 절도 여러 개 세웠다,이런 일들로 인해 그는 부산과 경남 지역에서 교육자로, 또 자선사업가로 이름이 알려진 분이다.

생전의 윤효랑선생은 자신감이 넘치고 신념이 뚜렷한 분이셨다. 그런데 이 분이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은 59세 때이다. 당뇨로 고생을 했는데 합병증으로 인해 실명의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병원에서 치료불가라고 하는 통보를 받고 절망에 빠져 퇴원을 준비하고 있던 어느 날, 옆 병실에서 찬송소리와 기도소리가 들려왔다. 그 순간 살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그 노래가 듣고 싶었다. 그래서 그 노래 부르는 사람을 불러 오라고 하였다. 죽음을 앞에 둔 가족의 뜻을 누가 마다하겠는가(?)

그날 윤선생은 처음 만난 생면부지의 사람들을 통해 예수님을 믿으면 영생을 얻는다고 하는 기독교의 위대한 복음을 처음 접하게 되었다. 그는 더 지체하지 않고 예수님을 영접하였고, ''하나님을 믿으면 나을 수도 있겠다.''고 하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고 난생 처음으로 “하나님 제가 아직도 할 일이 많습니다. 살려만 주시면 남은 생애 동안 전적으로 하나님을 위해 살겠습니다.”라고 기도하였다.

이렇게 기도한 그에게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베푸셨다. 눈을 열어 다시 보게 해 주신 것이다. 일주일만의 일이었다. 그 후에 그는 교회와 자신이 세운 학교를 오가며 덤으로 얻은 3년의 생을 간증과 전도로 살았고, 기독교 정신으로 학교를 운영하기로 하였다.

부친이 세상을 떠난 후 10여 동안 학교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무엇보다 함안은 유교적 성향이 강한 곳으로 기독교에 대한 핍박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교회를 다니는 학생들이 부모나 친지들에게 매를 맞거나 쫓겨나는 일도 비일비재하였다.

윤정숙선생은 부친이 세운 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쳤는데, 1992년부터 이사장으로 취임하였다. 그녀는 부친의 유지를 따라 명덕육영회 산하의 9개 학교의 정관을 “기독교정신”으로 학교를 운영한다는 내용을 담아 개정하였다. 그리고 학원복음화를 위한 첫 과제는 교사들에게 있음을 직감하고 교사들의 복음화를 위해 먼저 매진하였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들이 먼저 복음을 받아들이도록 지역교회 목회자들을 위촉해 학교마다 교목을 두고 매주 정기적으로 교사경건회와 성경공부를 인도하는 등의 활동을 통해 교직원들의 복음화에 매진하였다. 그리고 1998년에는 칠원중학교 내에 명덕교회를 짓고 교직원과 학생들의 신앙생활을 도왔다. 기독동아리 활동을 권장하고 신앙 상담도 병행하고 있다. 현재 9개 학교 교직원 200명 중 복음화율은 50% 정도, 남은 과제는 학생 복음화이다. 1,600여명의 학생 중 복음화율은 10-20% 정도라고 한다. 윤이사장은 기독동아리와 함께 시작한 성경공부를 지속함으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도록 인내와 사랑으로 이 일을 지속할 것이라고 한다.

내가 놀라는 것은 부친이 이사장으로 있던 당시의 함안여자고등학교는 기독교 활동은 거의 불가능했다. 불교신자인 이사장과 불신 교사들의 방해 때문이었다. 당시 기독교 학생들(SFC운동원)은 이러한 학교를 위해, 학원의 복음화를 위해 점심 시간과 방과 후에 학교의 앞동산에 모여 학원의 복음화를 위해 간절히 기도했던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기도가 이루어졌다는 소식을 30여년이 넘은 지금 신문을 통해 보게 되어 너무 기쁘다.  당시의 여리디 여딘 여중생, 여고생들이 모여 두 손을 모아 기도했던 그 기도가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실감하고 감사한다.

인생이 예수님을 만난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다. 주님이 만나 주신 인생은 변화한다. 한 때는 눈이 어두워 불교에 심취하였지만, 예수님을 만난 후 자신이 세운 학교를 기독교 학교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였고, 지금은 그 딸이 대를 이어 학원복음화를 위하여 매진하고 있다. 인생은 행복은 이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