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버지니아공대의 참사를 보고...

나는왕자 2007. 5. 7. 19:19

버지니아공대의 참사를 보고...

지난 달, 미국 버지니아공대에서 일어난 총격 사건을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다. 이 사건으로 인해 희생을 당한 사람들의 가족들은 너무나 큰 시련을 겪어야 했다. 어떤 사람들은 아들을 잃었고, 딸을 잃었다. 어떤 사람들은 사랑하는 애인을 잃었고 존경하던 스승을 잃었다. 아픈 상처들이 빨리 치유되기를 간절히 소원한다. 미국인들도 아팠고, 한국인들도 함께 아파했다. 오늘 일간지에는 그날 사건의 주인공이었던 대학생의 어머니가 아들에게서 귀신을 쫓아내려고 했었다고 하였다. 아들이 귀신이 들려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그의 어머니는 자기 아들의 상황을 심각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버지니아 공대의 사건을 통해 몇 가지 사실을 정리해 보려고 한다.

첫째, 인생은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날 아침에 그런 일이 일어날 것을 알았다면 누가 학교에 갔겠는가? 인생의 생명은 내게 있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의 주권하에 있다.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시면 참새 한 마리도 땅에 떨어지는 일이 없다. 정말 인생의 생명은 한 순간에 사라지기도 한다. 그러므로 살아 있을 동안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 잘 믿어야 한다.

둘째, 평소에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이 각인되게 살아야 하겠는다는 것이다.

사건의 당사자였던 그 친구에게는 친구도 없었다고 한다. 같은 학과에서 수업을 받으면서도, 같은 기숙사에서 잠을 자면서도 그가 누구인지 전혀 생각나는 일이 없었다고 하는 이들도 있었고, 그가 수업에 제출한 작문은 많은 친구들에게 섬뜩한 인상을 주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희생을 당한 한 여학생에 대해서는 “착하고 발랄하고 봉사 정신이 강한 학생”...등의 수식어가 따라 붙었다. 사람의 인품과 족적에 대해서는 그가 세상을 떠나고 나면 드러난다. 이것은 사람들 세계에서 다 통하는 일이다. 성경에는 이스라엘과 유다의 임금들에 대해, “다윗의 길로 행한 선한 왕”, 혹은 “여호보암의 길로 행한 악한 왕”이라는 표현들이 나와 있다. 이스라엘과 유다의 임금들이 세상을 떠난 후에 남겨진 평판이다. 세상을 떠난 후에 사람들이 최소한 “그 사람은 악한 자는 아니었다”라고 하는 말을 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셋째, 인생은 누군가에게 통제를 받는다. 또 받아야 한다.

부모이든지, 친척이든지, 주위의 사람들에 의해 통제를 받기도 하고 통제를 하기도 해야 된다. 그러한 통제는 인생을 인생되게 다듬는 것이 된다. 성경은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하였다. 우리가 죄악을 이길 수 있는 힘은 성령의 능력을 덧입는데 있다. 바울은 성령의 법을 말하였다. 성령의 법에 의해 통제를 받으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뿐만 아니라 빛난 삶을 살 수 있다. 동생 아벨을 죽인 가인의 이야기를 잘 알고 있다. 하나님은 가인이 동생 아벨에 대해 시기하고 질투하는 악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아시고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찜이냐? 죄가 문 앞에 엎드리나 너는 죄를 다스리라”고 일러 주었다. 하지만 가인은 자신 속에 일어나고 있는 악의 요소를 제거하지 못했고, 통제하지 못했다. 그 결과 그는 무서운 악을 저지른 최초의 살인자가 되고 말았다.

넷째, 성경은 아는 것으로 만족할 책이 아니다. 성경은 믿어야 할 책이다.

사건의 주인공은 교회를 다녔고, 성경을 알았다고 한다. 알되 제대로 알지 못했다. 오히려 성경을 악용하였다. 기독교인이 아닌 자들 가운데서도 믿는 자보다 더 성경을 많이 읽는 자도 있고, 믿는 사람들보다 성경 내용에 대한 지식을 많이 가지고 있는 자도 있다. 하지만 성경은 믿으라고 주어진 책이다. 그 속에서 예수님을 발견하고 그 예수님을 믿어 영생하라고 주어진 하나님의 사랑의 언약의 책이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읽고 듣고 지키는 자들은 복을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