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 영화제에서 우리나라의 여 배우 전도연이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는 낭보가 들어 왔다. 외화에 의해 가뜩이나 어렵던 영화계로서는 자신감을 얻는 주요 계기가 되었다고 본다. 성공적인 영화들이 많이 만들어지기를 바란다.
“밀양”이라는 영화는 경남 밀양을 배경으로 한다. 고통사고로 남편을 잃은 신애가 아들 준을 데리고 살길을 찾아 남편의 고향이었던 밀양을 찾아 간다. 밀양 입구에서 이들을 태운 차가 고장이 나고, 차 수리 때문에 카센타 사장을 만난다. 남편의 고향이지만 아무런 연고도 없었고, 그야말로 평범한 한 여인으로서 자신이 처한 상황에 아무런 대책도 없이 하루 하루를 살게 된다. 한 때 피아니스트의 꿈을 지녔던 그녀는 아이와 함께 피아노 학원을 운영하기 시작하였고, 이웃 사람들에게 돈이 있는 것처럼 땅을 사겠다며 소문을 내며 스스히 발을 붙여 간다. 그러나 그 소문 때문에 돈을 노린 유괴범에 의해 아들이 살해되는 불행을 또 만난다. 의지할 데 없게 된 그녀가 절망에 빠져 있을 때, 이웃 사람의 전도로 교회를 다니기 시작한다. 그 때부터 고통을 종교적인 힘에 의지하여 치유를 받으려 하지만 어느 날 아들을 죽인 살인자를 찾아갔다가 하나님에 대해 절망한다. 그 때부터 그녀는 자해를 거듭하다가 동맥을 긋게 되고 병원에 실려 간다. 퇴원 후 그녀는 다시 남편의 고향에서 마련한 집, 아들을 잃은 곳, 피아노 학원이 있는 곳으로 되돌아온다.
이 영화는 인간의 고통과 그것을 해결해 보려고 하는 인간 실존의 내용을 잘 표현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남편을 잃은 것도 그렇고 유일한 피붙이 아들을 잃은 것도 그렇다. “남편 잡아먹고, 아들까지 잡아먹고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는 독한 년”이라고 욕을 당하면서도 끄떡없다는 듯이 견디는 것 같았지만 어느 순간 허물어지기 시작하고 괴로움을 감당할 수 없어하는 여러 가지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다. 마침내 그녀는 교회를 찾지만 그 속에서도 위안을 찾지 못했다. 결국 죽음을 선택하지만 그것도 그녀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아프고 아픈 인생, 배신과 살인, 죽음, 등의 고통스러운 질곡의 인간 실존의 모습을 잘 그려낸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모습을 신애라고 하는 박복한 여인으로 등장시켜 놓았다. 뿐만 아니라 돈 때문에 자신이 가르치던 아이까지 유괴하여 살인하는 삐뚤어진 인간 실존의 모습도 보게 되고, 카센타 사장의 과장된 실존의 모습도 보게 된다. 고통 앞에서 아우성치는 가족들의 모습도 볼 수 있다. 외에도 여러 가지 모습을 볼 수 있지만, 이 영화에서 절망은 인간 실존의 한 모습으로, 아니 전부인 듯이 나타나고 있다.
사랑과 배신, 희망과 절망, 감사와 원망 등 인간 실존의 내용을 불신자들이 더 잘 그린다. 그러나 고통과 절망이 인간의 실존의 전부인 것은 아니다. 부분이다. 그래서 성경 전도서에는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플 때가 있고 안을 때가 있고....”라고 하였다. 슬픈 날도 있지만 기쁜 날도 있다. 전쟁할 때도 있지만 평화할 때도 있다. 그 중에 어두운 날이 더 많을 수 있다. 그것을 마치 전부인 것처럼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두 번째 이 영화는 철저히 무신론적 인간 중심의 영화이다. 절망 가운데서 이웃 사람의 인도로 신애는 교회를 찾았다. 하지만 영화가 보여주는 것은 그녀가 찾았던 신(하나님이라고 말할 수 없다)도 그를 거부한다는 것이다. 그녀는 아들까지 잃은 절망적인 상황 가운데서 교회를 찾았다. 얼마 후 그녀는 평안을 얻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녀가 그렇게 믿었을 뿐이다. 그녀는 아들을 죽인 살인자를 찾아 갔다가 그곳에서 하나님께 용서를 받았다고 하는 말을 듣고, 마음이 변한다. 이때부터 그녀는 하나님께 대하여 반항을 하게 된다. 그녀는 죽음을 선택하지만 그것마저 그녀를 거부한다. 이 영화에서 그녀에게 유일한 탈출구는 그겨 곁에 항상 있어주는 노총각 김사장이었다. 마흔이 넘도록 장가도 못한 김사장은 서울에서 내려온 여인 신애를 사랑한다. 그래서 포마드도 발라보는 것과 같은 과장된 모습으로 그녀에게 웃음도 안겨 주며, 신애 주위를 항상 맴돈다. 사람들이 흉을 보아도 상관하지 않고 신애 주위에서 위로를 해 주는 유일한 사람으로 나타난다. 밀양에서는 하나님보다는 사람이 가깝고 사람이 우선이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인간은 하나님 앞에 서야 한다. 하나님 앞에 있을 때만이 자신이 누군가를 알게 되고 자신을 맡기게 된다. 어거스틴은 “내가 하나님 안에 있을 때에야 참 평안을 얻었다”고 하였다. 하나님만이 인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세 번째 이 영화에서 교회가 등장하는데 충분히 잘못된 전달이 가능하다. 때때로 세상 사람들 앞에 교회가 왜곡되어 전달될 때가 있다. 교회도 세상 속에 있기 때문에 잘못된 일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교회는 죄와 슬픔, 고통으로 아픈 인생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교회의 역할이 바로 전달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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