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스젠더(transgender)와 호적정정 허용을 보며....
지난 달 22일, 대법원에서는 “성(性)전환자는 호적 바꿀 수 있다”는 내용의 판결을 하였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결정은 질서유지나 공공복리에 어긋나지 않는 한 성전환자도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향유하고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는 헌법 정신에 따른 것이다. 재판부는 "출생 시에는 그 사람의 정신적, 사회적 성을 인지할 수 없으므로 통념상 생물학적 성에 따라 법률적 성이 평가되지만 이후 한결같이 생물학적 성에 불일치감과 위화감을 갖고 반대 성에 귀속감을 느끼면서 신체적, 사회적 영역에서 전환된 성 역할을 수행한다면 전환된 성이 성전환자의 법률적 성이라고 평가받을 수 있다"며 출생 후 스스로 판단해 갖게 되는 사회적 성을 인정했다.
성전환자, 즉 트랜스젠더(transgender)라는 용어는 1970년대부터 사용되기 시작했다. 미국에서 사람들에게 경멸을 받던 ‘버지니아 프린스’라는 여장 남자가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트랜스젠더’라는 말을 처음 사용했고, 1981년, ‘성의 사회’ 라는 책에서 트랜스젠더라는 용어가 등장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사용되었다.
성(性)의학에서 트랜스젠더는 성적 주체성 장애자로 사춘기 이후에도 자신의 선천적 성에 대해 지속적으로 불편함과 부적절감을 느끼며 자신의 1, 2차 성징을 제거하고 반대 성징을 획득하려는 집착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남성이나 여성의 신체를 지니고 태어났지만 자신을 반대의 성의 사람이라고 여기는 사람을 말한다. 메스컴에 자주 등장하는 연예인 하리수를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것이다. 그러나 트랜스젠더라고해서 모두 성전환 수술을 받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성호르몬 요법으로 반대 성의 육체적 특징을 지니면서 성기는 태어날 때 모습 그대로 간직한 채 살아가는 트렌스젠더도 많이 있다. 트랜스젠더 중 성전환 수술을 받은 사람을 트랜스섹슈얼(transsexual)로 세분화하기도 한다. 따라서 하리수와 같이 성전환 수술을 한 사람은 트랜스섹슈얼이다. 트랜스섹슈얼을 포함해 이런 성향을 지닌 사람을 통틀어 트랜스젠더라고 부른다.
근래에 와서 우리는 동성재자, 성전환자에 대한 보도를 자주 듣게 된다. 먼 나라에서만 있는 일로 여기든 ‘게이 프레이드’와 같은 집회가 우리나라에서도 열리고 있고, 이러한 사회적인 일들이 교회 안까지 침투해 들어오고 있다. 지난 달 열린 미국장로교총회에서는 동성애자의 성직자 자격 여부에 대하여 유예기간을 허용하기로 했다고 한다.
이미 유럽의 여러 나라들, 스웨덴은 1972년에 성전환자의 성별 정정을 입법으로 허용했고 다른 국가들은 판례로 이를 인정하고 있고, 영국도 2004년 입법을 통해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 우리와 가까운 일본은 2003년 7월 ‘성 동일성 장애자의 성별의 취급의 특례에 관한 법률’을 제정, 이듬해부터 시행했다. 우리나라도 이번에 대법원이 성전환자의법적 성(性)을 고칠 수 있도록 허용함에 따라 성전환자의 호적정정을 허가하는 국가가 됐다.
성전환자가 호적상의 성을 정정(訂定)하게 되면 병역 문제를 비롯해서 일반인들이 누리는 여러 가지 권리를 누리게 된다. 그 개인에게는 좋은 일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기독교인으로서 몇 가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문제들이 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지은 성을 인간이 마음대로 고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할 때에 처음부터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다. 이를 사람이 인위로 바꾸는 것은 인생을 창조한 하나님에 대한 배반인 동시에 창조 질서를 어지럽히는 죄악이다.
두 번째는 사회 질서의 혼란을 가져올 수도 있다. 하나님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 결혼을 할 것을 명하셨다. 그리고 결혼은 자녀 출산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동성애자나 성전환자의 경우, 자녀를 얻을 수 없다. 결혼 전에 성전환자인가를 구분해야 한다면 이 또한 사회적인 혼란을 가져올 수 있는 문제이다.
세번째는 시대적 특징을 간과할 수 없다. 시대가 바뀌고 있음을 절실히 느끼게 한다. 트랜스젠더나 동성연애 등이 21세기의 특징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러나 21세기에 나타날 현상 중의 하나임에는 틀림없다. 21세기는 주님이 오시는 세기이다. 주님이 오실 세기는 믿음을 찾아보기 힘든 세기이다. 가인의 시대가 죄악이 극에 달했고, 노아의 시대에 죄악이 극에 달했고, 롯이 살던 소돔 땅에 죄악이 극에 달했다. 죄악이 극에 달한 시대는 하나님의 심판이 가까운 시기임을 성경을 통해 볼 수 있다. 죄악은 자신도 망하게 했고 사회도 망하게 했고 국가도 망하게 했다. 이를 방심해서는 안된다. 얼마 전에 군의 수장인 장관이 군대 내의 동성애자들을 처벌하거나 강제 전역하도록 하는 군형법을 폐지나 개정을 검토하겠다고 했다가 여론에 밀려 백지화했다. 수장이라면 그가 속한 사회나 단체를 생각해야 한다. 개인의 인권도 중요하지만 사회의 보편적인 인식과 정의 실현도 중요하다.
네번째는 참된 치유책은 그리스도의 복음밖에 없음을 기억해야 한다. 복음만이 어떤 심령이라도 치유할 수 있다. 복음이 들어간 곳에, 복음을 들은 사람들 중에서 이중 결혼을 했던 자들이나 축첩을 했던 자들, 강도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역사가 있었음을 보지 않는가! 이 시대는 죄악을 죄악으로 보지 않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리스도인들만이라도 깨어 자기를 세속에 물들지 않게 하는 자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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