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3장 16절에서 보는 하나님의 선교
성경 전체는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신다고 하는 하나님의 선교 이야기로 충만한 책이다. 구약은 죄인을 구원하겠다는 약속과 그 결과 죄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돌아오게 한다는 약속으로 채워져 있다고 한다면 신약은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어 십자가에 죽게 하심으로 그 약속을 성취하였다는 것과 그가 구원하신 하나님의 왕국 안으로 그의 거룩한 백성들을 모아들이겠다고 하는 약속으로 채워져 있다.
성경 전체의 핵심적인 요약이라고도 하는 요한복음 3장 16절은 이러한 하나님의 위대한 선교 이야기를 압축해 놓고 있다. 선교란 무엇인가?
첫째는 하나님의 선교는 하나님의 존재로부터 시작한다.
기독교는 하나님이 태초부터 계신다고 하는 선언에서 시작한다(창 1:1, 요 1:1, 히 11:6). 그 하나님이 창세 전에 자신의 사람들을 선택하였다. 그것은 그분이 영광을 받으시기 위함이었으며, 그 사람들을 자신의 아들로 삼기 위함이었다(엡 1:3-6). 그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였다(창 2:6).
그 하나님은 창조의 하나님, 구원의 하나님, 언약의 하나님이시다.
그 하나님은 노아와 그 가족을 방주를 통해 구원하였고, 아브람을 불러내어 하나님의 백성의 조상이 되게 하였다(창 12:1-4).
그 하나님은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시대마다 사람을 세워 파송하였다.
그 하나님은 죄인을 구원하기 위한 구주를 보내주기로 약속하였고 마침내 구주를 세상에 보내주셨다.
하나님의 선교는 영적일 수 밖에 없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하나님께서 실천해 가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자신이 계획하고 실천해 가는 과정에 사람들을 들어 쓰신다.
둘째는 하나님의 선교의 대상은 세상에 있는 죄인들이다.
요한복음 3:16절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라고 하였다. 여기에 나오는 “세상”(헬, 코스모스)은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일반적으로는 ‘세상(world), 또는 ‘지구’(earth)를 뜻하지만, 요한복음에 있어서 이 [코스모스]는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의미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직접 창조한 자기 소유인 ‘하나님의 자기 사람들’이다. 하나님이 만드신 ‘자기 땅’, ‘자기 사람들’이 이 [코스모스]에 해당한다(요 1:10-11, 3:17). 무엇보다 요한복음 3:16에서 “세상”은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 가리키고 있다(요 1:29, 3:16, 17, 6:33, 12:47, 고전 4:9, 고후 5:19). 마태복음 1:21에서는 “자기 백성”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내신 그리스도께서 자기 백성에게 찾아왔으나 자기 백성인 사람들은 자기의 주인인 예수를 알아보지 못했고 거부하였다. 영접하지 아니하였다(요 1:11). 그들은 잃어버린 자들이었다(눅 15:24, 19:10). 이러한 사람들이 선교의 대상이다.
셋째는 선교의 동인은 하나님의 사랑이다.
요한복음 3:16절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라고 하였다. 여기 “이처럼 사랑하사”라고 하는 말은 기독교의 독특함을 나타내는 말이다. 기독교는 다른 어떤 종교와는 비교될 수 없는 종교이다. 그 가장 큰 이유는 하나님의 존재로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영원부터 계신 하나님이 영원한 시간에 어떤 사람을 구원하기로 정하신 것이 독특하다. 이 세상을 창조한 것이 특이하다. 그리고 역사 가운데서 그 택자를 불러 모으고, 구원하는 방법 또한 특이하다. 신비에 싸여 있는 종교이다. 무엇보다 죄인들을 사랑했다는 종교는 기독교 외에 어디에도 없다. 인간이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먼저 사랑하였다(요일 4:19). 에베소서 2:4-6을 보면,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라고 하였다.
긍휼과 사랑이 선교의 동인이다(욘 4:2, 11).
넷째는 하나님의 선교에 있어서 실제는 “독생자를 주셨다”고 하는 것이다.
세상을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최고의 표현은 그 아들 “독생자”를 주신 것이다(요 3:16). [독생자]는 “유일무이하신 자”이다. 그리스도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나타내신 유일무이하신 자이다(요 1:18). 하나님은 죄인들을 구원하는 방법으로 그 아들을 내어 주셨다. 하나님이 주신 그 아들만이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시고자 하는 구원을 얻는 유일한 길이다(행 4:12). 여기 “주셨다”(헬 : di,dwmi, 디도미)는 말은 단순한 줌(give)이 아니다. 번역할 수 있는 최고의 표현이 "주셨다"(gave)는 것이었기 때문에 이같이 번역했겠지만 이 말은 구약 시대에 희생 제물을 제단에 차려 놓음을 의미하고 있다. 독생자 예수를 십자가에 희생시켜 달아 놓았음을 의미한다(요 3:14-15, 고후 5:21, 딛 2:14).
이 구절과 함께 생각할 구절은 로마서 5:8이다.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하였다. 여기 “확증했다”는 말은 영어 성경(NIV)에서는 demonstrates로 번역한 것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이 그 아들 예수를 십자가에 희생시켜 놓고 우리를 향하여 이것이 내가 너희를 사랑하는 증거라고 외치심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의 선교에서 중심 메시지는 “하나님이 독생자를 주셨다” “하나님이 당신을 이처럼 사랑하므로 독생자를 주셨다”고 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보냄을 받은 사도이다(요 20:21).
다섯째는 하나님의 선교는 인간에게 믿음이라고 하는 반응을 나타내게 한다.
요한복음 3:16에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라고 하였다. 믿음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행하시고 나타내신 그리스도에 대한 인간의 반응이다. 믿음은 인간의 공로나 선행이 아니다. 그럼에도 예수를 믿는 것을 자신의 선행이나 공로로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이 믿음은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나온 하나님의 선물이다(요 1:12-13, 엡 2;8-10). 복음의 제시는 인간에게 믿음이라고 하는 반응을 가져 온다(눅 19:1-10).
여섯째 하나님의 선교의 결과는 인생으로 하여금 영생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요한복음 3:16에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였다. [영생, eternal life]은 영원한 생명, 즉 죽지 아니함, 쇠하지 아니하는(not perish) 생명을 의미한다(요 3:15, 16). 그러나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영생]은 하나님이 주신 구원 선물이다(행 16:31, 엡 2:8). [영생]은 하나님이 베푸시는 무한한 복락이다. 세상에서 나사로는 죽음에 이르는 고통을 겪었지만 죽음 이후에 아브라함의 품에 안겨 위로와 은혜를 입었다(눅 16:25, 계 7:17). 또 [영생]은 [낙원] 즉, [천국]이라고 하는 장소성의 의미도 있다(눅 23:43). 또한 [영생]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하나님의 영원한 통치에 참여함도 의미한다(계 20:4-6).
하나님의 선교는 하나님이 살아계시다고 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러므로 선교는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증거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계획하고 실천하는 하나님의 위대한 일을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선교는 이 세상에 있는 죄인들이 대상이다. 하나님의 선교의 동인은 하나님의 사랑이다. 하나님의 선교는 하나님이 그의 독생자를 세상을 위하여 내어 줌 같이 하나님의 사람을 땅끝까지 파송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선교는 선교의 중심 주제인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선교의 결과는 복음의 말씀을 듣고 믿는 자에게 영생이 주어지는 것이다. 선교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구원하기 위한 수단이다(고전 1:21, 롬 1:16). 하나님의 보냄을 받은 자는 누구든지 이 위대한 하나님의 선교를 위하여 헌신해야 한다. 그 헌신은 기도와 감사, 서원, 충성으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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