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영광의 강단 22-14 (2022년 3월 20일 주일예배설교)
“여호와의 궤를 메고 간 다윗”
(사무엘하 6:12-23)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삶을 사는 자입니다. 예배를 감격 속에서 드리는 자도 있지만, 구경꾼처럼 바라보는 자도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을 통해 예배는 어떻게 드려야 하는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여호와의 궤를 메고 간 다윗”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Ⅰ. 다윗은 여호와의 궤를 다윗 성으로 옮겼습니다.
본문 12절에 “…다윗이 가서 하나님의 궤를 기쁨으로 메고 오벧에돔의 집에서 다윗 성으로 올라갈새”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이 된 다윗은 바알레유다(기럇여아림) 아비나답의 집에 있었던 여호와의 궤를 예루살렘 다윗 성으로 옮겼습니다.
1. 1차 계획은 웃사의 죽음으로 실패하였습니다.
사무엘하 6장 1-2절에 “다윗이 이스라엘에서 뽑은 무리 삼만 명을 다시 모으고 다윗이 일어나 자기와 함께 있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바알레유다로 가서 거기서 하나님의 궤를 메어 오려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사울을 이어 이스라엘의 왕이 된 다윗은 혼란스러웠던 나라의 어려움을 하나씩 극복해 나갔습니다. 전투를 통하여 여부스 사람들을 쳐서 시온 산성을 차지하였고(삼하 5:1-10), 사울의 때에 잃어버렸던 영토도 회복하였습니다(삼하 5:17-25). 주변국들과의 외교 관계도 좋아졌고(삼하 5:11), 강성한 나라를 이루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삼하 5:10). 다윗은 “…여호와께서 자기를 세우사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신 것과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그 나라를 높이신 것을 알았더라”(삼하 5:12)고 하였습니다. 매사가 잘 될 때, 자기가 잘 나고, 잘해서 잘 된 것으로 아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자기가 잘 나고, 자기가 전쟁을 잘했기 때문에 잘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와 함께 하심으로 이스라엘이 강성하여 졌고, 자기를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신 분도 하나님이시며, 그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그 나라를 높이셨다고 믿었습니다.
이렇게 나라가 강성하고 잘 될 때, 다윗은 이스라엘에서 뽑은 삼만 명을 데리고 바알레유다로 가서 하나님의 궤를 메어 오려고 하였습니다(삼하 6:2). 이것은 사울의 때에 단절되었던 하나님과의 교제를 회복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대상 13:3). 그런데 하나님의 궤를 메고 오려고 했던 계획을 수레에 싣고 오는 것으로 수정하고 준비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언약궤를 수레 위에 싣고, 소들은 수레를 끌고, 아효와 웃사는 수레를 끄는 소들을 몰았습니다. 누구도 사고가 일어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소들이 뛸 때, 웃사가 손을 펴서 하나님의 궤를 붙잡으려 하다가 즉사하는 일이 발생하였습니다. 이와 함께 하나님의 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려던 일은 중단되었고, 하나님의 궤는 오벧에돔의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2. 2차 계획은 성공적으로 마쳤습니다.
본문 12절에 “어떤 사람이 다윗 왕에게 아뢰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하나님의 궤로 말미암아 오벧에돔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에 복을 주셨다 한지라 다윗이 가서 하나님의 궤를 기쁨으로 메고 오벧에돔의 집에서 다윗 성으로 올라갈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궤가 오벧에돔의 집으로 들어간 지 석 달이 지날 무렵, 어떤 사람이 다윗 왕에게 ‘오벧에돔이라는 사람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가 복을 받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궤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그 사람과 그 사람의 집에 복을 주셨습니다’라고 알려 주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다윗은 오벧에돔의 집으로 가서 하나님의 궤를 다윗 성으로 옮기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1) 레위 사람이 여호와의 궤를 메고 옮겼습니다.
역대상 15장 2절에 “다윗이 이르되 레위 사람 외에는 하나님의 궤를 멜 수 없나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택하사 여호와의 궤를 메고 영원히 그를 섬기게 하셨음이라 하고”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궤에는 네 개의 고리가 있었습니다. 옮길 때는 그 고리에 긴 채를 꿰어 레위 지파에 속한 고핫 자손이 어깨에 메어야 했습니다(민 4:15).
하나님의 궤를 두 번째 옮길 때, 다윗은 1차 때의 사고를 기억하고 반성하였습니다. “전에는 너희가 메지 아니하였으므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니 이는 우리가 규례대로 그에게 구하지 아니하였음이라…”(대상 15:13)고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찢으셨다’라고 번역된 ‘파라츠’(ץ??)는 ‘깨뜨리다’, ‘돌파하다’ ‘파괴하다’ 등의 의미를 지닌 단어로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사 5:5, 시 60:1, 89:40), 제사장에 대한 징벌(출 19:22, 24), 개인에 대한 징벌(삼하 6:8, 욥 16:14), 완악한 왕에 대한 징벌(대하 20:37), 이스라엘의 대적들에 대한 징벌(삼하 5:20, 왕상 14:11)을 말할 때 사용된 단어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의 거룩을 범한 웃사를 공격하여 치셨던 것입니다(7-8절). 하나님께서 웃사를 징벌한 이 사건은 사실상 하나님의 궤를 메지 않고 수레에 싣고 옮기려고 했던 다윗 왕과 이스라엘 전체를 징벌한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다’고 하였습니다. 다윗은 그 일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궤를 옮기기 전에 자신의 실수를 고백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레위인이 어깨에 메고 옮겼습니다(대상 15:15).
2) 몸을 성결하게 하고 여호와의 궤를 옮겼습니다.
역대상 15장 12절에 “…너희와 너희 형제는 몸을 성결하게 하고 내가 마련한 곳으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궤를 메어 올리라”고 하였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성물을 옮기는 일이었습니다. 그 일을 하는 사람들도 성결하여야 합니다(출 19:22).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은 몸을 성결하게 하고 하나님의 궤를 옮겼습니다(대상 15:14-15).
3) 기쁘게 여호와의 궤를 옮겼습니다.
본문 12절에 “…다윗이 가서 하나님의 궤를 기쁨으로 메고 오벧에돔의 집에서 다윗 성으로 올라갈새”, 15절에 “다윗과 온 이스라엘 족속이 즐거이 환호하며 나팔을 불고 여호와의 궤를 메어오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기쁨으로’라는 말과 ‘즐거이’라는 말로 번역된 ‘쉬므하’(ה???)라는 단어는 ‘기쁨’, ‘즐거움’, ‘유쾌함’ 등의 의미가 있습니다. 다윗은 물론 이스라엘의 장로들과 천부장들, 모든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기쁨으로 하나님의 궤를 메고 옮겼던 것입니다. 시편 2편 11절에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라고 하였습니다.
4) 철저히 준비하고 여호와의 궤를 옮겼습니다.
역대상 15장 1절에 “다윗이…하나님의 궤를 둘 곳을 마련하고 그것을 위하여 장막을 치고”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은 다윗 성에 하나님의 궤를 둘 곳을 마련하고 장막을 쳤습니다(대상 15:1). 이것은 하나님의 궤를 옮기기 위한 준비였습니다. 역대상 15장 3-14절을 보면, 준비 과정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윗은 제일 먼저 아론과 레위 자손 팔백육십이 명을 모았습니다. 또 제사장 사독과 아비아달을 부르고, 레위 사람 우리엘과 아사야 등 지도자들을 불러 “…너희는 레위 사람의 지도자이니…내가 마련한 곳으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궤를 메어 올리라”(대상 15:12)고 하였습니다.
또 다윗은 레위인들 중에서 ‘노래하는 자들을 세우고 비파와 수금과 제금 등의 악기를 울려서 즐거운 소리를 크게 내라’고 하였습니다. 헤만과 아삽 등 삼십여 명의 사람들은 세마포 겉옷을 입고 노래하며, 놋제금을 치며, 비파와 수금을 타며 노래하였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었습니다(대상 15:16-24, 27).
이스라엘의 장로들과 천부장들과 이스라엘 무리는 크게 부르며 뿔나팔과 나팔을 불며 제금을 치며 비파와 수금을 힘 있게 타며 여호와의 언약궤를 메어 올렸습니다(대상 15:27-28). 이렇게 준비하고 즐겁게 여호와의 궤를 메고 움직일 때, 하나님께서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레위 사람을 도우셨습니다(대상 15:26). 이스라엘 온 무리는 준비했던 수송아지 일곱 마리와 숫양 일곱 마리로 제사를 드렸습니다(대상 15:26). 모든 행사를 무사하게 마쳤을 때도 번제와 화목제를 하나님 앞에 드렸습니다(대상 16:1).
여러분!
다윗과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궤를 다윗 성으로 옮겼습니다. 저들은 몸을 성결하게 하고, 하나님의 궤를 어깨에 메고, 즐겁게, 준비하고 옮겼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명령대로 행하였습니다(대상 15:13, 15, 민 4:15).
주님의 일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 수행할 때 기쁨과 은혜가 주어집니다.
Ⅱ. 다윗은 여호와의 궤를 옮길 때, 기뻐하였고 백성을 축복하였습니다.
본문 17-18절에 “여호와의 궤를 메고 들어가서 다윗이 그것을 위하여 친 장막 가운데 그 준비한 자리에 그것을 두매 다윗이 번제와 화목제를 여호와 앞에 드리니라 다윗이 번제와 화목제 드리기를 마치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백성에게 축복하고”라고 하였습니다.
1. 여호와의 궤를 옮기는 날, 다윗은 춤을 추며 기뻐하였습니다.
본문 13-15절에 “여호와의 궤를 멘 사람들이 여섯 걸음을 가매 다윗이 소와 살진 송아지로 제사를 드리고 다윗이 여호와 앞에서 힘을 다하여 춤을 추는데 그 때에 다윗이 베 에봇을 입었더라 다윗과 온 이스라엘 족속이 즐거이 환호하며 나팔을 불고 여호와의 궤를 메어오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궤를 옮기는 날, 하나님의 궤를 멘 사람들이 여섯 걸음을 간 다음에 다윗은 소와 살진 송아지로 감격과 감사의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날 다윗은 여호와 앞에서 힘을 다하여 춤을 추었습니다. 다윗은 베 에봇을 입고 어린아이처럼 뛰놀며 춤을 추었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에서 만나고 섬기며, 물으며, 교제하게 되었다는 즐거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택하여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워주신 은혜가 감사했기 때문입니다(21절).
2. 여호와의 궤를 옮기는 날, 다윗은 백성을 축복하였습니다.
역대상 16장 1-3절에 “하나님의 궤를 메고 들어가서 다윗이 그것을 위하여 친 장막 가운데에 두고 번제와 화목제를 하나님께 드리니라 다윗이 번제와 화목제 드리기를 마치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백성에게 축복하고 이스라엘 무리 중 남녀를 막론하고 각 사람에게 떡 한 덩이와 야자열매로 만든 과자와 건포도로 만든 과자 하나씩을 나누어 주었더라”고 하였습니다.
마침내 하나님의 궤를 멘 사람들이 다윗 성으로 들어가 장막 안 준비된 장소에 하나님의 궤를 안치하였습니다. 그때, 다윗은 제일 먼저 감사의 번제와 죄인인 인생에게 화평을 주시는 하나님께 화목제를 드렸습니다. 제사를 마친 다윗은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백성을 축복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와서 하나님의 궤를 옮기는 일을 직접 보고, 함께 기뻐하고 감사하며 노래한 백성에게 떡 한 덩이와 야자열매로 만든 과자와 건포도로 만든 과자 하나씩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궤를 옮겨 온 기쁨을 모든 백성과 함께 한 것입니다. 그 후에 다윗은 자기 가족을 축복하였습니다(20절, 대상 16:43).
3. 레위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칭송하며 감사하며 찬양하게 하였습니다.
역대상 16장 4-6절에 “또 레위 사람을 세워 여호와의 궤 앞에서 섬기며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칭송하고 감사하며 찬양하게 하였으니 아삽은 우두머리요 그 다음은 스가랴와 여이엘과 스미라못과 여히엘과 맛디디아와 엘리압과 브나야와 오벧에돔과 여이엘이라 비파와 수금을 타고 아삽은 제금을 힘있게 치고 제사장 브나야와 야하시엘은 항상 하나님의 언약궤 앞에서 나팔을 부니라”고 하였습니다.
백성을 축복한 다윗은 레위 사람들을 구별하여 항상 하나님의 궤 앞에서 섬기며 감사와 찬양을 하게 하였습니다. 또 다윗은 아삽과 그의 형제를 세워 여호와께 항상 감사 찬송하게 하였습니다(대상 16:37-42). 그 감사와 찬송은 역대상 16장 8-36절까지 이어집니다. “너희는 여호와께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불러 아뢰며 그가 행하신 일을 만민 중에 알릴지어다 그에게 노래하며 그를 찬양하고 그의 모든 기사를 전할지어다 그의 성호를 자랑하라 여호와를 구하는 자마다 마음이 즐거울지로다”(대상 16:8-10)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여호와의 궤를 다윗 성으로 옮기는 날, 다윗은 이스라엘의 장로들과 레위인들, 모든 백성과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하였습니다. 다윗은 어린아이처럼 춤을 추며 감사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장로들과 레위인들, 모든 백성도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하였습니다. 다윗은 백성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였습니다. 또 레위인을 구별하여 여호와의 궤 앞에서 항상 섬기며 감사하며 찬양하게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벧에돔의 집에 있던 하나님의 궤는 마침내 예루살렘으로 옮겨졌습니다. 그날 다윗은 레위인으로 하나님의 궤를 어깨에 메고 옮기게 하였습니다. 몸을 성결하게 하고 옮겼습니다. 준비하고 옮겼습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옮겼습니다. 하나님께 제사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궤를 옮기는 날 다윗은 춤을 추며 감사하였습니다.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은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하며 감사하였습니다. 백성도 기뻐하며 감사하였습니다. 다윗은 백성을 축복하였습니다. 인생은 하나님을 즐거워하여야 하고, 그의 구원과 역사를 감사하여야 합니다.
이 즐겁고 기쁜 날, 모든 사람이 감사하는데, 감사하지 않고 즐거워하지 않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사울의 딸 미갈이었습니다. 본문 16절에 “여호와의 궤가 다윗 성으로 들어올 때에 사울의 딸 미갈이 창으로 내다보다가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서 뛰놀며 춤추는 것을 보고 심중에 그를 업신여기니라”고 하였습니다.
모든 백성이 노래하며 연호하는 시간에 그녀는 궁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궤가 다윗 성으로 들어올 때에 사람들이 기뻐 춤을 추며 노래하는 현장에 그녀는 가지 않았습니다. 궁에서 그녀는 역사적인 장면을 내다보았습니다. 그 시간 그녀는 구경꾼일 뿐 기뻐하며 감사하는 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내다보는 그녀의 눈에 아이처럼 춤을 추는 한 사람이 들어왔습니다. 그는 그녀의 남편이자 왕인 다윗이었습니다. 그 순간 그녀는 다윗을 업신여겼습니다. 여기에서 ‘업신여기다’라고 번역된 ‘빠자’(ה??)라는 단어는 ‘경멸하다’, ‘멸시하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녀는 다윗이 자기 가족을 축복하려고 궁으로 돌아왔을 때, “…오늘 이스라엘의 임금님이, 건달패들이 맨살을 드러내고 춤을 추듯이, 신하들의 아내가 보는 앞에서 몸을 드러내며 춤을 추셨으니, 임금님의 체통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20절, 표준새번역)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을 들은 다윗은 “…그렇소. 내가 주 앞에서 그렇게 춤을 추었소…나는 언제나 주 앞에서 기뻐하며 뛸 것이오”라고 하였습니다(21절, 표준새번역). 그리고 “내가 스스로를 보아도 천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주님을 찬양하는 일 때문이라면, 이보다 더 낮아지고 싶소. 그래도 그대가 말한 그 여자들은 나를 더욱더 존경할 것이오”(22절, 표준새번역)라고 하였습니다.
즐겁고 기쁜 날, 함께 찬양하지 않고 기뻐하지도 않았던 미갈은 하나님 앞에서 뛰놀며 감사하는 다윗을 멸시했던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녀는 사울 왕의 딸이었습니다. 부친 사울은 충신 다윗을 죽이려 하였으나 오히려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았고,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패배하고, 길보아 산에서 오빠 요나단도 함께 죽었습니다. 그때부터 그녀에게는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때, 다윗은 사울이 살아있을 때 블레셋 사람 이백 명을 죽이고 그 목숨값으로 그녀와 정혼을 하였고, 그녀를 아내로 맞아들였습니다(삼상 18:27). 그녀는 한때 공주로서 다윗을 사랑하여 그의 목숨이 위태할 때 보호해 주기까지 하였습니다(삼상 18:20, 28, 19:9-12). 그랬던 그녀가 어느 날부터인가 다윗을 업신여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한 마음이 하나님의 궤를 옮기던 날 밖으로 표출되었던 것입니다. 남을 업신여기는 것은 그 자체가 죄요, 불행한 일입니다(잠 14:21, 15:20).
여기에서 우리는 예배를 어떻게 드려야 하는가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같이 예배를 드려도 감사와 감격이 넘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무런 감격이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곁에 있는 사람은 은혜를 받았다고 하는데,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곁에 있는 사람은 감사하다고 말하는데, ‘뭐가 감사해?’, ‘나는 감사하지 않아’라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이 창으로 내다보는 사람, 예배자가 아닌 구경꾼입니다. 미갈은 마음으로 다윗을 업신여겼습니다. 그녀를 성경은 ‘다윗의 아내 미갈’이라고 하지 않고, ‘사울의 딸 미갈’이라고 하였습니다(16, 20, 23절). 그녀가 다윗을 업신여긴 데는 공주로 자랄 때, 공주는 기쁜 일이 있어도 기쁘다는 표현을 하면 안 되고, 슬픈 일이 있을 때도 슬퍼하면 안 된다는 식의 교육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그 영향으로 공주로서의 체통, 왕으로서의 체통이 있어야 한다는 사고가 자리를 잡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녀는 감사해야 할 시간에 감사하지 않았고, 오히려 예배하며 감사하여 춤추는 다윗을 멸시하였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궤를 옮길 때, 힘을 다하여 춤추며 기뻐하였습니다. 감격 속에서 힘을 다하여 예배해야 합니다. 주신 은혜를 생각하며 감사합시다. 본문 21절을 보면, 다윗은 “…이는 여호와 앞에서 한 것이니라…내가 여호와 앞에서 뛰놀리라”고 하였습니다.
예배와 감사와 감격은 사람 앞에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이 보시는 데서 하는 것입니다. 온 힘을 다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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